여태껏 겨울 같지 않다가 한껏 추워진 지난 25일, 목도리를 둘둘 말고 여의도로 향했다. 길을 설명해주는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가는 길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뭇 설레었다. 인터뷰를 하러 갈 때면 괜시리 좋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찾느라 힘드셨죠? 날씨도 추운데…커피 드릴까요?”
약속시간이 조금 넘어 도착한 기자에게 드디어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네오카오스의 김수영 기획실장이다. 커피보다 더 따뜻한 미소로 환대해주는 김수영 실장과 딱딱한 인터뷰가 아닌 편안한 이야기가 나누고 싶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되네요. 기자님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대기업 사원이 아닌 이벤트 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다
▲ 네오카오스 김수영 실장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김수영 실장에게서 지난 13년 동안 이벤트 업계에 몸을 담아온 노련함보다는 신입사원 같은 풋풋함이 흐른다. 김수영 실장은 경북대 수석졸업생을 시작으로 현재 특유의 기획능력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업계의 인재로 인정받고 있다.
“대학교 때 친구들은 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바빴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대기업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저는 쉽게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수없이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친언니가 있는 파리를 가게 되었어요.”
김수영 실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장 받은 미래가 아닌 도전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었다고. 학창 시절부터 학생회, 연극 등을 숱하게 참여해 온 그녀는 대기업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고 웃을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때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네오카오스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아트카오스였는데. 저희 회사가 여러 가지 이벤트 기획을 맡고 있긴 하지만 공공문화이벤트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거든요.”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는 축제 만들고 싶어…공공문화이벤트 주력
그녀는 특정한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축제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네오카오스에 입사했다. 주식회사 네오카오스는 이벤트 행사를 단순히 상업적인 경계 안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문화 전령사로서 문화를 개척하고 신문화 가치 창출을 기업 목적으로 두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 행사를 묻고 싶었지만 지난 13년간의 세월을 둔다면 시간이 너무 짧은 관계로 2010년 한 해 만을 기준으로 바꿔 물어보았다. 그런데 1년이란 기간도 그녀에겐 짧지 않은 듯 해 보인다.
“노동절 마라톤 대회를 맡게 되었는데 2만 여명이 참여했었어요.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축제니까 어떻게 보면 국민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했어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놀다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획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분들이 전부 행복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그럴 때 정말 뭉클하죠.”
▲ 노동절 마라톤 대회
그녀는 또 지난 10월 희망의 씨앗 생명나눔 기념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장기나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는 사생대회, 콘서트, VIP 소장품 경매 등 정부공식 기념행사로 좋은 평을 듣기도 했다.
▲ 희망의 씨앗 생명나눔 기념행사
“많은 공공기관들이 참여하는 만큼 규모가 커서 모든 직원이 발로 뛰고 또 뛰었죠. VIP 소장품을 받으려고 일일이 방문하고 좀 더 많은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문을 두드렸어요. 직원 모두가 몇 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지만 행사가 무사히 끝나게 되었을 때의 그 성취감과 보람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스릴과 긴장감이 일하는 활력소 “녹화방송하고는 비교도 안되죠”
그런가 하면 13년의 노하우를 지닌 그녀에게도 때론 진땀을 빼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주항공 나고야 취항행사인 한류스타 ‘이서진과 함께하는 제주항공의 밤’ 때는 행사가 일본에서 열리기 때문에 한국 방문객이 아닌 일본 방문객의 시선에서 행사를 기획해야만 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많이 달라요. 한국은 인터넷 홍보나 참여가 많이 활성화 되어있는 반면 일본은 지면에 의존하는 경우가 크죠. 그래서 또 발로 뛰어야만 했어요.(웃음)”
▲ 제주 나고야 취항행사 '이서진과 함께하는 제주항공의 밤'
그녀는 제주항공 나고야 취항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일본 팬들의 동호회, 커뮤니티, 팬사이트에 직접 글을 올렸다. 덕분에 한류행사는 2천여 명의 일본 팬들을 유도하며 성황리에 마치게 됐다. 그녀는 이런 스릴과 긴장감은 이벤트 기획을 하는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벤트 일을 이렇게 오래 하고 있지만 언제나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이 곳의 성격이거든요. 저희는 녹화방송이 아닌 그야말로 생방송이에요. 무슨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 그래서 항상 긴장하는데 이런 스릴감이 일하는 활력소가 되요.”
▲ 민주당 야외 전당대회
이밖에도 그녀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최초 야외 전당대회로 기획해 안정적 전자투표 운영으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업계에서 PT 발표를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완벽한 PT 발표의 노하우가 있냐고 살짝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시금 얼굴이 발개지며 이야기 하는 그녀다.
“딱히 그런 것은 없어요. 과찬이신데…(웃음). 굳이 말하자면 발표하기 전에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많이 하구요. PT는 사실 업계의 모든 분들이 실력자들이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행사에 대한 키워드를 정확히 파악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림을 머리 속에 정확히 그려나가는 것이죠.”
창의적인 기획…’결과’ 아닌 ‘왜’가 중요해
그녀의 철저한 준비성 때문일까. 주식회사 네오카오스는 정부공식기념행사나 지자체 축제, 공기업 행사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최근 시상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시상에 대한 공적내용도 주식회사 네오카오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내용이기도 하다.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결과가 아니라 왜? 무엇 때문에?가 저에겐 더 중요하죠. 그래서 행사를 기획할 때도 사람들이 ‘왜 이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부터 던지곤 해요. 시상식 공적내용도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받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기획하게 됐어요.”
▲ 녹십자MS신제품발표회에서의 김수영 실장
이처럼 탁월하고 완벽한 기획력으로 모든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그녀에게 과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힘들 때는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럴 때가 있어요. 광고 기획 하는 우리의 일들을 한낱 행사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CF나 방송계통은 어느 정도 정의가 확립되어 있는 상태지만 이벤트 기획은 축제가 아닌 그냥 행사거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벤트에 대한 잘못된 시선…우리가 고쳐 나가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여파는 행사를 준비하는 데 그대로 전해진다. ‘이벤트 기획’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성립되지 않아 주최측에서 준비해줘야 하는 자료나 정보도 부족할 때가 있다. 또한, 행사에 참여하는 연예인 몇몇 역시 프로다운 모습이 아닌 ‘용돈벌이’로만 생각해 진행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일을 겪을 때면 많이 속상하긴 한데 바꿔 생각하면 그것 역시 우리 기획자들이 바꿔나가야 하는 중요한 숙제인 것 같아요. 가령, 각 기업에서 이벤트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이벤트 기획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면 이런 문제가 많이 줄어들지 않겠어요? 이벤트넷에서 교육의 장을 열어주세요.”
사람 좋게 웃으며 부탁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하다. 그녀는 이것은 비단 자긍심의 문제라고 전한다. 일을 요청 하고 받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중해준다면 이벤트 업계에서 발로 뛰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한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가끔 기획자들을 무시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허탈해하는 후배들을 볼 때가 있어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거죠. 물론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런 후배들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자긍심을 부여하고 즐겁게 일하게 해준다면 이벤트 업계도 한층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멋스러운 그녀 김수영 ‘반할 수 밖에…’
문득, 이런 그녀가 있는 네오카오스의 후배 기획자들이 부러워졌다.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마녀 같은 선배가 아닐까라며 웃어버린다.
▲ 제주도 워크샵에서의 김수영 실장
“때론 언니처럼, 때론 못된 상사처럼 당근과 채찍을 함께 주고 있어요.(웃음) 저는 후배들이 꼭 제대로 배워줬으면 하는 것이 있어요. 기획서와 운영 매뉴얼이에요. 기획서 잘 쓰려면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글쓰기 훈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논술대회”를 열기도 하지요. 또, 운영 매뉴얼은 무조건 완벽하게 익히게 해요. 기획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터득하고 있어야 기획한 그림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녀의 말에 쏙 빠져 고개를 끄덕거리는 시간이 훌쩍 한 시간을 넘어갈 때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다른 스케쥴이 있어서 어서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쉴 때는 뭐하냐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잔뜩 담긴 질문을 던져버리고 만다.
“쉴 때는 여행가요. 제 인생의 모토가 ‘현재를 즐기자’거든요. 휴가 땐 무조건 여행을 갑니다.”
아아. 함께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기자와 인터뷰이의 만남이 아닌 그녀의 말대로 후배들에게 때론 ‘언니 같은’ 그녀의 모습으로 만나서 여전히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 처음 만났을 때처럼 따뜻한 미소로 배웅해 준 그녀를 눈에 담고 돌아섰다. 인간 김수영이 아닌 ‘작은 거인’ 김수영을.
이벤트넷 김보미 기자 / kiku444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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