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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장이자 이벤트 프로젝트 프로듀서인 이각규소장이 한국근대박람회라는 책을 출간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조하면 된다.
이각규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장이자 이벤트 프로젝트 프로듀서다. 부산산업대학교(현 경성대학교)를 졸업한 후 (주)롯데전자 광고실 디자이너, (주)대홍기획 프로모션국 이벤트팀장, (주)세륭기획 엑스포사업부장, 투웨이프로모션 대표, (주)서울광고기획 SP국 부국장을 지냈다.
이벤트라는 단어가 낯설던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이벤트 프로듀서들과 교류하며 박람회를 연구했다. 국내 최초로 이벤트 티켓 온라인 발매 사업을 주도했고 ’93대전세계박람회의 홍보 캠페인, 이벤트, 회장 운영, 문화행사 등을 기획하고 컨설팅했다. 이천도자기축제, 금산인삼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의 지역 축제를 국제적인 축제로 성공시켰다. 여러 지자체의 지방박람회, 지역축제를 컨설팅 및 심사했고,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자문한다. 국가전문행정연수원, 시·도공무원연수원, 문화·관광 관련 공공기관 등에서 25년간의 현장 노하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21세기 지역 이벤트 전략』(2000), 『이벤트 성공의 노하우』(개정판, 2007), 『지역 이벤트』(2008) 등이 있고, 역서로 『기적을 만드는 이벤트 전략』(1994), 『스페셜 이벤트』(2005)가 있다.
서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 두 차례 참가한 것은 외국에 조선을 알
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세계박람회 참가 경험은 기술과 품질,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조선의 산업 수준이 매우 낙후되었음을 절실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종은 이러한 관심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박람회와 관련된 법제를 제정하였다.
- ‘1장 근대박람회 경험과 세계박람회 참가’ 중에서
이 두 박람회의 조선인 전시는 당시 계몽적이며 중립적인 박람회에 대한 인식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근대박람회라는 이벤트 공간이 진보와 발전이라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장(場)이라는 현상만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이며 비인도적인 논리와도 얼마든지 접목되고 사회문화적,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의도들을 재현하는 복합적인 장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2장 대한제국의 박람회와 일본박람회의 조선인 전시’ 중에서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수많은 제품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소비를 유발했던 조선박람회는 그 자체가 식민지적 근대의 표상이었다. 백화점이 주로 경성 사람들의 소비를 겨냥한 것이라면, 박람회는 그 소비를 조선 전역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근대적인 기획이었다.
- ‘5장 경제 불황 속에 개최된 시정 20주년 기념 1929년 조선박람회’ 중에서
조선총독부가 의도한 아시아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한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지원’이라는 정치적 목적은 박람회장의 배치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정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중앙로 좌우의 전시관은 시정기념관과 황국역사관으로 내선일체 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전시에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시관의 배치는 조선인들에게 전쟁의 성과를 선전하고 전쟁 수행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박람회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 ‘6장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의 선전장 1940년 조선대박람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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