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내가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머리회전이 있었다면, 좀 더 쉽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가끔 그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빈곤의 흔적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마른버짐으로 남아있던 나에게, 새로 입문한 후배들의 싱싱한 건강상태는 비단 젊음의 그것만은 아닌,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나오는 산물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배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개진되는 사고의 유연성과 규격화되어 보이지 않는 행동의 자유로움을 보면 ‘격세지감’’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젊은 시절 많은 부분이 책임감과 성취욕으로 점철되어 있던 나와는 다른, 그들의 다양한 관심분야 그리고 취미와 놀이문화에 때로는 주눅이 듭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발맞추어 잘 진화되어 온 후배들의 모습에 흠뻑 빠져 있다가, 그들의 빠른 ‘싫증내기’와 곧이은 ‘바꿔타기’를 보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빠르던 머리회전은 ‘이 자리가 빨리 끝났으면……’하는 생각들로 순식간에 집중력을 잃어 버리고, 나를 매료시켰던 그들의 눈빛에서 더 이상 열정과 패기는 찾아볼 수 없어집니다.
나 역시 신입사원 시절, 내가 선택한 이 ‘일’이 과연 내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했습니다. 당시, 대학동기들이 증권회사와 은행 그리고 무역회사에 입사해서 객관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될 때, ‘지금이라도 갈아타야 하지 않을까……’하고 갈등했습니다.
수 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이 직업을 선택한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학교 동기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선택한 내가 도마질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절대로 포기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안줏감이 되지 않기 위한 필살의 노력이 20년 동안 이벤트의 길을 걷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선택하게 되는 ‘하나’의 길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그 ‘길’의 선두 주자가 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갈 수 없고, 가지 못할 길들의 수 많은 유혹 속에서 갈등합니다.
더구나 너무 빨리 흘러가는 시류에 발 맞추어온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다양한 유혹에 한 가지를 선택하기 힘들어 하고, 또한 그것을 갖기 힘들 경우 너무 빨리 ‘신포도’로 단정짓고, 또 다른 ‘포도’를 찾기 위해 새로운 길을 떠나곤 합니다.
문지방 효과(Threshold Effect)를 마케팅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 문지방만 넘어서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포기 결정으로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우’를 범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신입사원들의 경우, 위에서 서술한 갈등이 심하고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안타깝게도 3~5년차 대리급, 혹은 7~10년차 팀장급에서도 이런 현상을 적잖이 봅니다.
우리업계의 대리급들은 여러 종류의 행사에서 기획과 현장 업무 능력을 한창 쌓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막 대리를 달은 후배들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행사를 하나 경험하게 되면, 모든 종류의 행사에 철 없는 자신감을 가지며, 이벤트가 ‘다 똑같지 뭐!’하며 자만심까지 가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럴 때 다른 종류의 행사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의 철없음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의 자만심을 거둡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정도가 심한 이는, 자기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철학과 더 나아가 한국 이벤트 현실과도 맞서며 싸움을 마다않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아직 현실을 논하기 보다는 실무를 하나하나 익혀나가야 할 위치에서 여물지 않은 이벤트 회사의 경영방침과 우리 업계의 현실을 논하는 일은 어느 정도 세상의 무게와 이벤트 업계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에게 그들의 숙제로 넘겨주고, 자신들은 미래를 위한 몸 만들기와 무기 다루기에 열중해야 할 것입니다.
팀장급 후배들은 잘 단련된 몸과 숙련된 무기로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에 골몰해야 할 때입니다. 현재 좋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힘이 떨어진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숙련된 무기를 바꾸어야겠다는 고민은 정말 철없는 생각에 불과합니다.
내가 제일 힘이 좋을 때, 무술이 출중해 졌을 때, 좀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싸움터에서 많은 것들을 획득해야 합니다. 내가 힘이 있고 이만큼 숙련된 무기로도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면, 생소한 다른 무기로 바꿔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더욱 없습니다. 나에게 숙련된 무기에 신 기술이 가미된 여러 장치를 더해 나가야 할 때에, 무기를 바꾼다면 그 미래는 불을 보듯 자명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고민 중 우리 자신의 오늘에 해당되는 그것들을 해결하기에도 힘든 우리가, 미래의 일에 대한 그것들에 시달리곤 합니다.
너무 빨리 변화하는 시류에 적응하다 생긴 부작용일까요?
몸 만들기에 3년, 권법 익히기 2년, 칼 다루기 3년, 창 다루기 2년, 그리고 말로 이기기 5년, 뻔뻔하게 도망가기 5년, 그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하늘의 뜻을 배우기 10년……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며 살아온 우리 후배들이 한번쯤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를 충분히 돌아본 연후에, 감정적인 빠른 결론보다는 냉철한 이성이 전제가 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서, 섣부른 판단으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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