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먼저갔습니다...광수야~~

2012.09.10 17:06 엄상용 조회 7,605 댓글 0

40년 지기인 친구 박광수가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한국이 아닌 일본 동경 신오쿠보 자택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인 9살부터 친구였으니 가족을 제외하곤 가장 오래된 친구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저로 하여금 “이벤트”라는 직업을 갖게 한 장본인입니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다니면서 광고회사 거손의 모니터 요원을 하면서 광고와 이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입구 인근 술집에서 ‘이벤트’에 대해 얘기를 듣던 중 갑자기 “feel" 이 왔습니다. 토목을 전공했던 제게 새로운 분야를 알게 해준 겁니다. 대학교 4학년이던 해에 이 말은 결국 제가 이벤트를 직업으로 택한 계기가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 이벤트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재수를 해서 85학번을 다녔던 녀석은 저보다 늦은 시기에 연하나로 기획에 입사를 했고 이후 한국경제신문 사업부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달리 갔지만 때가 되면 항상 보는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축제에 갔다가 녀석과의 사전담합에 의해 제가 가진 행운권을 추첨해주는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적도 있습니다. 녀석은 재수를 했는데 재수를 해서 성균관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불합격이 되었습니다. 낙담한 녀석은 제게만 살짝 얘기를 하곤 무단가출을 했습니다. 가출이라는 것이 춘천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밤에... 다급한 목소리로 형수가 전화를 했습니다. 도련님 연락이 안된다구요...

혹시 연락이 닿지 않냐는..... 추가 합격을 했다는 겁니다. 녀석은 불합격에 따른 낙담(?)여행을 갔는데 합격축하 여행이 된겁니다.

그해 1년 전에는 제가 후기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가출을 감행했는데 동행한 녀석입니다. 물론 가출한 당일 이대앞에서 술 한잔 하고... 친구집인 김포에 가서...겨울 토끼 사냥하고.. 익일에 집에 들어갔습니다만...

대학때 남가좌동에서 광명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술 한 잔이라도 한 날에는 녀석이 우리 집에 와서 자든지..아니면 광명으로 가서 자곤 했습니다. 신촌에서 술을 먹으면 항상 먹던 곳이 있습니다. 길거리 포장마차 떡복이와 오뎅. 법칙은 일단 먹고나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놈이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와서 잔 어느 날. 녀석이 칫솔질을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엄마가 신발 닦는 칫솔로 과감히 이빨을 닦고 있더군요...

녀석이 다니던 성균관대 근처 419집이라고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 하던 친구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신촌은 페드라... 술은 곤드레 만드레 먹고 다녔지만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던 녀석이었습니다.

40년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갑니다.

올해 3월과 4월 일본 동경에서 만나 녀석의 집에서 잤습니다. 일본인 와이프도 엄상(제 성을 붙여서..)은 늘 환영이었습니다. 3월에는 처갓집에서 담은 묵은지를 잔뜩 들고 갔습니다. 그 다음 에는 여수 갓김치를 사들고 갔습니다.

며칠 전.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던 중...

만취한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광수야... 울 마누라하고... 밤도깨비 여행간다...소주 한잔 해야지...횡설수설~~~~”

다음날 전화가 왔습니다. 녀석은 기뻐하며...빨리 오라 합니다.

전 아직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십니다. 10여년 전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제가 철이 들고 나서 가장 소중한 분이 돌아가신겁니다. 그 동안 나이가 들다보니 주변 동창이나 친구 혹은 지인 중에서 먼저 유명을 달리 한 경우는 더러 있었습니다만....하여간 녀석이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오늘 오후 3시에 화장을 했습니다. 일본 동경에서 했습니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데 자꾸 욕이 나옵니다. 일요일 하루 종일...그리고 오늘도 하루 종일...녀석한테 욕이 나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아줘야..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거 아니냐구. 정말 세상에서... 가릴것 없이 별 수다를 다 떨수 있는 친구였는데...

녀석은 술하고 담배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원없이 술을 먹고 담배를 펴도...건강에 아무 이상없는 나라에서 편히 살길 바랍니다.

만약에 ...그럴일은 없지만..

혹시나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쎄게 뺨을 한 대 후리고 욕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쁜 놈이라구요~~

내 친구 광수...

편히 살고...맘편이 술, 담배 해라~~

악의 적인 댓글이나 공격성 댓글은 고지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0개의 댓글

댓글 등록

최상단 이동